아무리 열심히 살아도 뭔가 허전하다.
삶이 내 것이 아닌 것처럼 느껴질 때가 있다.
현대 사회를 살아가는 많은 사람들, 특히 직장인이나 취업 준비생, 그리고 30~40대의 중장년층은 '나는 지금 나답게 살고 있는가?'라는 질문 앞에서 혼란을 느낀다. 매일 해야 할 일에 쫓기고, 사회적 기대에 부응하며 살아가다 보면, 문득 자신이 이 길을 왜 가고 있는지조차 모를 때가 있다.
오늘은 자율성의 상실이 인간의 심리에 어떤 영향을 주는지, 무기력은 왜 찾아오는지, 그리고 어떻게 다시 나의 삶을 회복할 수 있을지 함께 알아보겠다.
삶을 조종당하는 느낌, 왜 이렇게 피곤할까?
"내가 원해서 하는 일인데 왜 이토록 버거운 걸까?"
이런 질문은 단지 일에 지친 피로감 때문만은 아니다. 그 깊은 원인은 '자율성의 상실'에서 비롯된다.
자율성은 단순히 자유롭게 행동하는 것을 넘어서, ‘스스로 선택하고 결정한다는 감각’을 말한다.
심리학자 에드워드 디시(Edward Deci)와 리처드 라이언(Richard Ryan)의 자기결정이론(Self-Determination Theory)에 따르면, 인간은 자율성(autonomy), 유능감(competence), 관계성(relatedness)이라는 세 가지 심리적 욕구가 충족될 때 가장 건강하고 만족스러운 삶을 살 수 있다.
하지만 현실은 어떤가?
직장인은 상사의 지시, 조직의 룰에 따라 움직이고
취업 준비생은 스펙과 기준에 맞춰 자신을 끼워 맞춘다
30~40대는 가정과 책임감에 묶여 '나'를 뒤로 미룬다
이처럼 끊임없이 타인의 기대와 외부 환경에 의해 결정되는 삶을 살다 보면, 우리는 점차 ‘내 삶을 내가 살고 있다’는 감각을 잃게 된다. 그리고 바로 그 지점에서 무기력이 시작된다.
무기력은 단순한 게으름이 아니다.
선택권을 박탈당한 상태에서 반복적으로 이어지는 스트레스와 억압이 쌓이면, 인간은 스스로를 포기하는 쪽을 선택하게 된다. 이것이 바로 심리학에서 말하는 학습된 무기력(learned helplessness)이다. 반복되는 외부 통제 속에서 우리는 점점 ‘시도 자체’를 하지 않게 되고, 내 삶에 주도권이 없다는 절망감에 빠진다.
나는 언제부터 '선택'을 멈췄을까?
우리는 언제부터 삶을 '사는 것'이 아니라, '견디는 것'으로 받아들이기 시작했을까?
많은 사람들이 대학, 전공, 직업, 결혼, 육아 등 인생의 주요 선택 지점에서 진심으로 자신이 원하는 길을 선택했다고 느끼지 못한다. 선택지 자체가 제한되어 있었거나, 사회적 기준과 기대에 따라 자동적으로 방향이 정해졌기 때문이다.
"성적에 맞춰 전공을 택했다."
"남들 다 가는 대기업이니까 나도 준비했다."
"나이 되니 결혼해야 할 것 같아서 했다."
이런 이야기들은 매우 흔하다. 하지만 이런 '외부 기준에 따라 살아온 삶'은 내면의 자율성을 심각하게 훼손한다.
그 결과, 다음과 같은 감정이 반복적으로 찾아온다.
아무리 성취해도 공허하다
내 일이지만 소속감이 없다
결정권은 나에게 없는 것 같다
이게 진짜 내가 원하는 삶인지 모르겠다
이러한 감정은 정체감 혼란으로 이어지기도 한다.
"나는 누구인가?", "내가 정말 원하는 것은 무엇인가?"라는 질문 앞에서 자신 있게 대답할 수 없는 이유다.
중요한 것은, 이런 삶이 누군가의 잘못이 아니며, 현대 사회 구조에서 자연스럽게 발생하는 문제라는 점이다. 따라서 우리는 자신을 탓하는 대신, 지금부터라도 주도권을 되찾는 방향으로 나아갈 필요가 있다.
자율성을 회복하는 삶의 재설계 방법
자율성을 되찾는다고 해서, 갑자기 회사를 그만두고 산속으로 들어가야 한다는 뜻은 아니다.
작은 선택부터 다시 시작하면 된다. 중요한 건 ‘선택의 주체가 나’라는 감각을 회복하는 것이다.
1) '자동 반응'에서 벗어나기
타인의 말이나 상황에 자동으로 반응하지 말고, 잠시 멈추고 생각하기
이 말을 지금 꼭 해야 할까?
이 약속은 정말 내가 원하는 걸까?
이 일을 하는 이유는 무엇일까?
작은 질문을 던지는 연습은 자기 인식을 높이고, 선택의 주체로 서는 연습이 된다.
2) 하루에 단 한 가지라도 스스로 선택한 행동 하기
메뉴 하나를 고를 때도 진심으로 내가 먹고 싶은 걸 선택하기
출퇴근 루트를 바꾸어 나만의 리듬 만들기
일 끝난 후 ‘해야 할 일’이 아닌 ‘하고 싶은 일’을 30분만 하기
이처럼 아주 작은 행동에서도 자율성은 자랄 수 있다.
3) '해야 한다'를 '하고 싶다'로 바꾸는 연습
해야 한다는 압박은 무기력을 키운다. 똑같은 행동도, 의미를 바꾸면 감정이 달라진다.
"운동을 해야 한다" → "내 몸을 위해 운동하고 싶다"
"회사 가야 한다" → "경제적 독립을 위해 일하고 있다"
내가 왜 이 일을 하는지, 어떤 가치를 위해 선택했는지를 스스로 설명할 수 있어야 한다. 그때부터 삶은 더 이상 남의 것이 아니다.
우리는 모두 어느 정도 사회의 구조 속에서 살아간다. 그렇기에 100% 내 마음대로 선택하며 사는 것은 불가능할 수도 있다. 그러나 그 한계 속에서도 ‘내가 선택했다’는 감각을 회복하는 것, 그게 바로 자율성을 되찾는 시작점이다.
삶의 속도를 줄이고, 아주 작은 선택이라도 나답게 해보자.
무기력한 일상 속에서도 삶이 조금씩 ‘내 것’이 되어가는 감각, 분명 다시 찾을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