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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대하지 않으면 정말 덜 상처받을 수 있을까?

by 수아롱 2025. 4. 7.

참 이상하다. 기대하지 않기로 했는데도, 여전히 마음이 아프다.

오늘은 기대하지 않으면 정말 덜 상처받을 수 있을지에 대해 알아보겠다.

기대하지 않으면 정말 덜 상처받을 수 있을까?
기대하지 않으면 정말 덜 상처받을 수 있을까?

 

감정을 차단하는 사람들 – '기대하지 않음'이라는 심리적 방어

 

“기대하지 않으면 실망도 없다.”
겉보기에 이 말은 이성적인 조언처럼 들린다.
누구에게도 큰 기대를 걸지 않고, 어떤 일에도 기대를 품지 않으면 덜 다치고 덜 흔들릴 수 있다고 믿게 된다.

이런 태도는 일종의 감정 회피(Emotional Avoidance) 전략이다. 실망과 상처의 가능성을 원천 차단하기 위해 애초에 감정적 연결 고리를 줄이려는 심리적 방어기제다.

기대 자체를 하지 않음으로써 ‘실망’이라는 감정을 피하고자 하는 것이다.

 

하지만 문제는, 감정을 차단하면 아픔뿐 아니라 기쁨도 함께 사라진다는 점이다.
기대는 기쁨과 희망이라는 감정을 함께 작동시킨다. 기대하지 않으면 자신을 감정적으로 무감각한 상태로 만들어버리기 쉽다.

이로 인해 “왜 나는 아무 일에도 설레지 않고, 기뻐도 감정이 덤덤할까”라는 또 다른 고민이 생긴다.
상처를 막기 위한 전략이 결국 정서적 마비라는 또 다른 고통으로 이어진다.

 

 

‘기대’는 왜 상처가 되기도 할까?

사람은 본능적으로 기대한다. 관계 속에서 연결되고 싶고, 삶에서 긍정적인 경험을 얻고 싶기 때문이다.
하지만 기대가 자주 실망으로 이어지면, 사람은 점점 감정 표현을 억누르며 '기대하지 않음'이라는 자기방어 전략을 택하게 된다.

이때 작동하는 심리 개념이 있다. 인지적 왜곡(Cognitive Distortion)이다.
“기대하면 꼭 상처받는다”는 생각은 모든 상황에 똑같이 적용되지 않는다.
실제로는 많은 기대가 충족되고 있고, 좋은 관계도 존재한다.


하지만 몇 번의 강한 실망이 뇌리에 각인되면, 그 기억만을 기준으로 세상을 해석하게 된다.

또한 기대가 상처로 이어질 수밖에 없는 사람들은 감정을 타인의 반응에 과도하게 의존하는 경향이 있다.
예를 들어 “내가 잘하면 저 사람이 날 좋아해줄 거야”라는 기대는 매우 조건적이다.
이 조건이 충족되지 않으면 사람은 그 사람의 반응이 아니라 자기 자신 전체를 부정하는 심리 상태에 빠진다.

문제는 기대 자체가 아니다.
기대의 방향과 대상, 그리고 그 기대가 좌절되었을 때 자신을 해석하는 방식이 상처의 강도를 결정한다.

 

회복 탄력성이 높은 사람은 기대를 놓지 않는다

‘회복 탄력성(Resilience)’이 높은 사람들은 실망을 피하려 하지 않는다.
상처받을 수 있다는 사실을 받아들이고, 그 이후에 다시 일어서는 능력을 키운다.
기대를 하되, 그것이 충족되지 않더라도 자기 가치를 부정하지 않는다.

 

이런 사람들은 이렇게 생각한다.

이번엔 안 됐지만 또 다른 가능성이 있다

기대는 자연스럽다. 내가 감정을 느낀다는 증거다

상처받아도 다시 회복할 수 있다

 

반면 감정 회피에 익숙한 사람들은 이렇게 생각한다.

기대했으니까 내가 바보였다

처음부터 아무 기대도 안 했다

이런 건 감정 낭비다. 어차피 실망뿐이다

 

문제는 후자의 방식이 겉보기에 차분해 보일 수 있지만, 감정의 정체와 원인을 알아차리는 능력을 약화시킨다는 점이다.
결국 자기 이해 부족, 정체성 혼란, 무기력으로 이어지기 쉽다.

회복 탄력성을 가진 사람은 상처받는 것을 두려워하지 않는다.
기대함으로써 삶의 에너지와 관계의 밀도를 풍부하게 만든다.
실망을 피하려는 것이 아니라, 실망 속에서도 자신을 지킬 수 있는 힘을 기른다.

 

 

 

기대는 약함의 표현이 아니다.
누군가를 믿고 싶고, 삶에서 의미를 찾고 싶은 인간적인 감정이다.

기대를 없애면 상처도 줄어들 수 있다. 하지만 동시에 삶의 감동, 설렘, 의미도 함께 줄어든다.
기대하지 않음은 정서적 회피의 다른 말일 수 있다.

진짜 회복은 기대를 없애는 데 있지 않다.
기대할 수 있는 용기, 그리고 실망 이후에도 스스로를 지킬 수 있는 내면의 힘을 기르는 데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