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족이라는 존재는 언제나 애매하다. 너무 가까워서 상처받고, 너무 익숙해서 벗어날 수 없다.
어떤 사람은 가족과의 시간이 회복의 시간이라 말하지만, 또 어떤 사람에게는 그 시간이 스트레스의 원인이 되기도 한다.
가족을 싫어하는 감정을 느꼈을 때, 우리는 스스로를 먼저 비난한다.
“내가 너무 예민한 걸까?” “가족을 싫어하는 내가 문제 있는 건가?”
하지만 이 감정의 이면엔 우리가 말하지 못했던 상처와 억눌린 감정들이 자리하고 있다. 오늘은 이에 대해 알아보겠다.
가족이라는 이름 아래 감춰진 감정들
우리는 “가족이니까 이해해야지”라는 말을 너무 자주 들어왔다.
이 말은 겉으로는 따뜻해 보이지만, 실제로는 개인의 감정을 무시하게 만든다.
부모에게 서운함을 느꼈을 때, 형제자매와 비교당해 속상할 때, 우리는 쉽게 말하지 못했다.
말하는 순간, ‘불효자’라는 낙인이 따라붙기 때문이다.
많은 사람들이 ‘가족’이라는 이름 아래 감정을 숨긴다.
애정도 있지만, 분노와 원망, 좌절과 실망도 분명 존재한다.
하지만 그런 감정들은 부정적인 것으로 취급되고, “그런 생각을 해선 안 돼”라는 규범이 무의식에 자리 잡는다.
그 결과, 상처받은 감정을 인식하기보다, 죄책감이라는 감정으로 덮어버리게 된다.
“내가 너무 욕심이 많았나 봐.” “그래도 부모인데…”
이런 사고는 감정을 무력화시키고, 관계 속의 문제를 객관적으로 바라보는 능력을 떨어뜨린다.
죄책감의 심리적 정체 – 나와 가족의 경계가 없을 때
가족이 싫은데 죄책감이 드는 건 내가 나빠서가 아니다.
그보다는 ‘정서적 융합(Emotional Enmeshment)’이라는 개념으로 설명할 수 있다.
이는 나와 가족의 감정 경계가 분리되지 않아, 서로의 감정에 과도하게 영향을 주고받는 상태를 말한다.
예를 들어 부모가 힘들어하면 자녀는 죄책감을 느낀다.
내가 거리를 두는 순간, 부모가 외로워질까 봐, 상처받을까 봐 죄책감이 앞선다.
하지만 이건 부모의 감정을 자녀가 지나치게 짊어지는 심리적 구조이며, 건강한 관계라 보긴 어렵다.
어릴 때부터 ‘우리’를 먼저 배운 우리는, ‘나’를 세우는 데 서툴다.
내 감정은 사소하게 느껴지고, 가족의 기분은 중요하게 다뤄진다.
이러한 환경에선, 정당한 감정조차 쉽게 억눌리게 되고, 결국 나의 감정이 나를 억압하는 아이러니가 생긴다.
심리학에서는 이런 구조를 깰 수 있는 첫걸음이 바로 ‘경계 설정’이라 말한다.
경계는 단절이 아니라, 자신과 타인을 분리하고 각자의 책임을 구분하는 작업이다.
거리를 둔다는 건, 사랑하지 않는다는 뜻이 아니라, 서로를 더 온전히 마주하려는 선택이다.
건강한 거리 두기 – 죄책감 없이 독립하는 법
우리는 가족을 끊어내는 게 아니라, 가족과 나를 분리할 수 있어야 한다.
부모는 부모대로의 삶이 있고, 나는 나대로의 삶이 있다.
그 당연한 사실을 인정하는 것이 독립의 시작이다.
가장 먼저 할 수 있는 건 ‘감정 기록’이다.
가족과의 대화에서 어떤 감정이 올라오는지 적어보는 것만으로도, 감정을 인식하고 객관화할 수 있다.
“그 말에 왜 화가 났을까?” “왜 저 반응에 불편했을까?”
이런 질문은 억눌린 감정에 이름을 붙이고, 자기 자신과의 관계를 회복하는 데 도움이 된다.
두 번째는 거리를 두는 것이다.
물리적인 거리든, 정서적인 거리든, ‘함께 있어야만 가족’이라는 관념에서 벗어날 필요가 있다.
주말마다 의무적으로 만나는 대신, 나의 컨디션에 따라 만남을 조절하는 것도 하나의 방법이다.
가족의 문제를 모두 해결하려는 태도도 내려놓아야 한다. 가족은 도움을 줄 수 있지만, 나의 삶을 대신 살아줄 수는 없다.
마지막으로, ‘죄책감’을 감정의 경보음으로 받아들이자.
죄책감이 든다는 건, 아직 나의 감정과 기준이 혼재되어 있다는 뜻이다.
이때 필요한 건 자책이 아니라 ‘정리’다.
나는 무엇을 원하고, 어디까지 책임질 수 있으며, 어떤 관계가 나에게 회복이 되는가.
가족을 싫어하는 감정은 ‘비정상’이 아니다.
오히려 그 감정을 직면했을 때, 비로소 관계를 건강하게 재정립할 수 있다.
중요한 건 가족을 끊는 것이 아니라, 가족이 아닌 ‘나 자신’으로 살아갈 수 있는 힘을 키우는 것이다.
그것이 진짜 독립이고, 성숙한 관계의 시작이다.